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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저는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들 조국을 위한 어떤 의로운 행동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았다. 예를 들어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한 ‘의’는 이런 것이 아님을 아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당시의 상황을 알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기에 소개를 하고자 한다.
죄인들은 체포되면 포승줄에 꽁꽁 묶인다.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의 야유와 함께 빌라도에게 끌려간다. 왕에게 끌려가 심판을 받는 것이다.
빌라도는 그를 그윽히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뻗는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 의인이 되는 것이고 내리면 그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 당시 의는 빌라도에 의한 것이었다. 죄수인지 의인인지에 대한 것은 절대 권력자인 빌라도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로운 행동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까 그 당시 사람들의 상황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겠지?’ 그러면 난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그 판단의 기준이 사람들인 것이다.
성경에 보면 또다른 심판자가 나타난다.
(요 8:1-11) 비슷한 사건이 성경에 또 등장한다.
예수님도 빌라도와 마찬가지로 그윽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다. 사람들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땅바닥에 그림만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화가 잔뜩 난채로 묻는다. “이 사람 죽일까요?” 예수님은 그제서야 천천히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정 그렇게 하고싶으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 그리고 무심하게 다시 땅에다가 그림을 이어 그리신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물러가고 그녀와 둘만 남은 예수님은 그녀를 보시며 어떤 행동을 하실까? 사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그녀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여러분은 누구한테 심판 받고 싶으십니까? 빌라도에게 가서 판단 받고 싶으세요? 예수님에게 가서 판단을 받고 싶으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에게 판단을 받고 싶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고 싶으시다면, 11절을 한 번 더 보기를 바랍니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판단의 기준을 사람들에서 하나님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내가 그 행동을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빌라도 곧 사람들에 의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의인이 되기를 희망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바란다면, ‘나의 행동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라는 생각을 갖고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머라하든 간에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내가 “사람의 말을 따르랴. 하나님의 말을 따르랴”라는 멋진 고백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란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하루를 마감하면서의 기도는 이런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처음 시작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바랬지만, 살다보니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고 내 맘대로 살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실패하는 것인가?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 그는 넘어지고 쓰러진 우리를 일으키시고 힘을 돋구어 주시는 분이지 정죄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 왜 그랬어!”라고 비판하기보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 내가 일으켜 줄게”란 말씀으로 다가오는 분이시다.
왜 그런지 아는가? 2절에서 보면 예수님의 생명 곧 성령이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님을 영원한 사랑의 관계에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이 잘못했다고 해서 정죄하고 죄인이라고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엄지손가락은 언제나 위를 향해 있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의로운 자라고 칭하신다.
그러니 우리는 든든한 그분의 응원을 받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번 한주도 당당히 살아가자.
특별히 이번 한주는 내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