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본문 요 21:3-13
서론
예비군
본론
제자들의 관점에서 가룟 유다는 믿음직했던 자이다.
1) 돈 궤를 맡은 자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2) 예수님이 이 안에 나를 배반할 자가 있다고 했을 때, 아무도 가룟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다.
- (마 26:21-22)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이유는?
1) 암시하는 구절이 하나 있다.
(마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2) 향유옥합을 사건 때, 그는 예수를 분노하기 시작했다.
(마 26:7-10)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300데나리온의 가치(ex. 차, 가방)
3) 그는 예수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실망했다...
(마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4) 그 결과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림
약 20만원 정도의 가치로, 당시 히브리 노예들의 값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헐값에 팔아버림. 자신에게 가치가 없음을 의미함.
5)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고난 당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뉘우침’
(마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5) 뉘우쳤으면 누구에게 갔어야 했을까요?
그는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모든 일을 무르려 했지만, 사실 그가 진짜 용서를 받으려면 대제사장이 아닌 예수님에게 찾아갔어야 했다.
6)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찾아가지 못함
왜 그랬을까? 예수님에게 너무 미안해서였을까?
(영상)
3. 그가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도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
1) “스스로 뉘우쳐”는 ‘후회하다’이며 단지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할 뿐이다. 그러나 “회개하다”는 후회해서 예수님을 향해 나가는 것이다.
2) 진정한 회개는 베드로를 통해 알 수 있다.
- (마 27:3)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3) 사실, 베드로는 가룟 유다 못지않게 예수님을 배반했다.
- 예수님의 수제자로 불렸으면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심지어 저주까지 퍼부었다. 이는 양대산맥, 용호쌍박, 쌍두마차, 막상막하란 모든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짓을 그도 했다.
4) 그러나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5)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그 미안함에 아무 일도 못했을 것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순간에 예수님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예수님에게 달려나갈 수 있었다.
4.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셨다.
결론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커도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배신한 가룟 유다처럼 베드로처럼 크진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해도 이들과 동일하지 더 클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순간에서든 예수님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그리스도인임을 부끄러워해서 예수님의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도록 합시다. 언제나 당당하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를 외치며 살아갑시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예수님의 눈에서 눈물나게 하면 안되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