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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등으로 하나님만 섬기라
서론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종교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 기독교가 있을 것이고, 두 번째로 기독교 같으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천주교, 세 번째로 불교, 네 번째로 이슬람이 있을 것입니다. 크게 나누면 네 가지이지만, 사실 종교의 개수는 더 많겠죠. 힌두교도 있을 것이고 조로아스터교 신천지 등등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시절에 신은 많았겠습니까? 적었겠습니까? 첨단 과학이 발달되어 기상까지 예측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새차를 사면 액운을 막아 사고 나지 말라고 이렇게 제사를 드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새차 고사 사진)
하물며, 그 옛날은 오죽했겠습니까? 단비가 오면 비 내리는 신이 복을 주었다고 생각했었고, 너무 많이 오면 비의 신이 노하셨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곳엔 농사의 신, 전쟁의 신, 다산의 신 등등 수많은 신이 존재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써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전히 수많은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모세가 없어지자 앞으로 자신들을 인도할 신은 바로 이 금송아지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그 땅에서 언제부터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기게 되었을까요?
(영상)
사실 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섬겼지만, 주변 환경들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보다 다양한 신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보았을 때, 애굽에서도 그렇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봐도 그렇고 그들은 비의 신, 농사의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상을 섬기는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루 종일 걷다가 밤이 되어 자려면 지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천막치고 웅크려자다가 다음 날이면 다시 그 천막을 접고 또 하루 종일 걷는 삶을 살며 먹는 것이라고는 매일 보는 만나뿐인데, 그들은 이동하지도 않고 한 장소에 거주하며 먹는 것도 다양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부러웠겠죠.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루 종일 걷는 삶보다는 그들처럼 농사의 신을 섬기며 한 장소에 머물러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지금보다 풍요롭고 지금보다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등한시했습니다.
2. 본론
그런데, 지금보다 풍요롭고 지금보다 더 안락해지고 싶은 마음에 우상을 섬겼던 그들처럼 우리도 이런 그들과 동일한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절에 가는 것도 아니고 성당에 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우상을 섬기고 있냐는 반문이 들겠죠?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 돈 많이 벌고 싶죠. 돈 많이 벌고 싶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보다 풍요롭고 지금보다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돈만 벌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이 나도, 서스럼 없이 범죄를 지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면은 보지 못하고 그가 가진 돈만 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치관을 잘 반영해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가 그 영화를 간략하게 일부분만 편집해왔는데 잠깐만 보시겠습니다.
(영화)
여러분들도 영화에서처럼 순식간에 20억을 벌 수 있다면, 여러분들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컴퓨터에 usb를 꽂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20억을 날려버리겠습니까?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살 것입니까? 돈을 바라보고 살 것입니까?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있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인지 ‘돈’인지 말입니다. 결국 여러분에게 주신 1계명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를 이 시대에 적용하자면,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인 지금 이 시대에서 ‘돈’이란 신에게 너 마음을 줄래? 하나님에게 마음을 줄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가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눅 16:13)”
예수님은 딱 잘라 말씀하시죠. “oo야, 돈이냐? 나냐?”
그러면, 돈은 무조건 나쁜 것입니까?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9)”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돈만 따라가려는 우리의 마음이 나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꽉 차 있고 돈이 수단이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하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따라 갈 것입니다. 만약, 나에게 돈이 필요하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돈을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결국 이 돈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바로 이 마음을 가지고 드리는 헌금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이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가진 이 돈은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로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십일조는 오늘도 내일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고, 여러분의 인생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 동행하며 지켜주고 계심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겠죠. 십일조는 이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는데도 여러분은 ‘나의 마음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진심어린 고백을 듣고 너무 기뻐하시는 것처럼,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십일조를 낼 수도 있고 내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의 권한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 되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일조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 복 받으려고 내고, 또 십일조 안내면 저주 받을 것 같으니까 이런 이유로 내고 안내고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코 묻은 돈 모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물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바로 그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계명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너는 돈을 섬기지 말고 나를 섬기라” 여러분은 정말 1계명을 여러분의 마음에 간직할 수 있습니까? 실천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상, 록펠러)
하나님은 록펠러와 같이 약 200조의 돈을 여러분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줄 수도 있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록펠러에게 왜 그렇게 큰 부를 허락하셨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10억을 주셨다고 해봅시다. 그럼 십일조는 1억입니다. 여러분, 십일조 1억 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큰 돈 앞에서 돈보다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까?
록펠러는 단 한 번도 십일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셨겠죠. 그에게 많은 부를 허락해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나를 따라올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만약, 록펠러에게 그만한 부를 허락했는데 그가 돈에 취해 하나님을 떠나버렸다면 그 부는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부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그 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그것이 십일조로 그의 믿음의 증거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오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