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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허용해야할까요

일상 꿀팁 2019. 8. 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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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허용해야 할까요? 여러분, 세계 평화지수란 것을 아십니까? 평화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하여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진한 초록일수록 평화지수가 높은 것이고 붉은 색으로 갈수록 평화가 낮은 것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우리나라는 47위입니다. 우리나라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는 살인이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살인은 타인을 살해하는 것만이 살인이 아닌 것 다 아시죠? 나 자신을 죽이는 것 역시 살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살인을 많이 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에 세계평화지수가 더 상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자살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불행함을 뜻하는 것이고 세계평화지수에 바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살하면 천국 갈까요? 지옥 갈까요? 각자의 다양한 대답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데요. 저는 우리가 이런 원색적인 질문보다 그들의 애환을 먼저 보듬어 줬으면 합니다. 사실, 구원을 받았을 수도 못 받았을 수도 있는 그 일은 하나님의 권한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우리가 왈가왈부 할 시간에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을 택했을까...’라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따듯한 포옹을 한번 더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라는 연민의 마음으로 그들을 봐주길 바랍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징조가 나타난다고 하니, 그들이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여러분이 먼저 다가가서 토닥여줬으면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많이 죽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것보다 부모님과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2012년 옛날 자료인데, 전문가한테 물어보니까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의 자살의 주된 원인은 가정불화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그들을 지지해주지 않으니 난 왜 이렇지? 난 왜 이렇게 실력이 없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난 왜 이렇게 못생겼지?’와 같은 자신을 자책하는 질문이 계속 든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죽음이 있습니다. 바로 선택적 죽음, 바로 안락사입니다.

 

저번 주에 이런 기사가 떴습니다. “14세 때 성폭행을 당했고, 그 고통이 너무 커 더 이상 살아 갈 수 없어 가족이 보는 앞에서 17세의 나이로 안락사로 눈을 감았다는 기사가 네이버에 떴습니다. 안락사 문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안락사를 다룬 영화 미 비포 유를 잠깐 감상하겠습니다.

 

(미 비포 유)

 

저는 이 영화 보기 전에는 자살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무조건 어느 상황에서든 하면 안되라는 생각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까 생각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남주인공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외향적인 성격인지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여행도 하고 레저도 즐기는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불미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부유하고 활기차던 지난날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대게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자살을 하는 이유가 있기보다는 살 이유가 없기 때문에 죽는다고 합니다.’

 

죽는 날만 바라보고 살고 있었으니 그의 인성은 개차반이었죠. 암흑의 나날을 겪고 있는 그에게 여주인공이 나타납니다. 그녀는 그저 돈이 필요해 그를 돌보는 일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가 이전처럼 밉지도 않고 측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주인공 역시 쾌활한 그녀를 보며 한 줄기 밝은 빛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윽고 그 둘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무도회에 함께 갔고, 둘만의 즐거운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위기가 이정도로 무르익어가니 당연히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남주인공은 사랑의 힘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오순도순 잘 살았을까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당연히 그 둘은 너무 잘 맞았고 남주인공 역시 드디어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것 같아 해피엔딩으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제 기대를 무참히 박살내더군요.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이 참 이쁘고 마음에 들지만, 앞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고통 그리고 내가 지금 겪는 고통에 비했을 때...자신은 정해진 날짜에 죽어야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에 대성통곡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마음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 이윽고 그는 눈을 감아버립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생각의 방향을 바꾼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영화 속 내내 행복해 보이는 장면이 가득했지만, 그것은 저의 관점이지 정작 남주인공 자신은 그 웃음 너머에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구나.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사랑하는 부모님과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구원은 하나님이 선택하실 문제이고 우리는 그들이 자살을 택하기 전에 그리고 택했더라도 그들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줘야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혹시, 이중에서도 영화 속 남주인공처럼 고통 가운데 있으신 분이 있나요? 그런 분이 있다면 오늘 설교를 듣고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아 스케이트 트렁크)

 

여러분,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스케이트 선수들이 사용하는 스케이트 트렁크라고 합니다. 얼마정도 될 것 같아요? 그 가격은 무려 3,400만원 이라고 합니다.

 

루이비똥에서 만든 제품이긴 해도 그 가격이 너무 비싸죠? 트렁크 가방이 3,400만원이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가방이 그렇게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가방을 누가 사용했냐면, 여러분의 생각대로 바로 김연아가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이 가방이 이렇게 비싼 이유가 조금 이해되시죠? 그렇습니다. 이 가방 자체는 비싸지 않을지라도, “누가 사용하느냐? 누구의 소유냐?”에 따라 그 가치가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이 가방을 여러분이나 제가 사용했다면, 이거 가격 얼마나 됐을까요? 100만원? 200만원? 루이비똥이니까 1,000만원? 이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김연아가 사용했다면 3,400만원이죠.

 

여러분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것인가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조 전부터 너를 계획했고, 너가 태에 있을 때부터 너를 지켜보았다. 나는 너를 이 땅에 보냈으며, 너가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너와 함께하는 여호와다. 너는 내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만약,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 혼자 걷는 인생이라고요. 그 인생이 마냥 행복하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실패하고 넘어져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뒤처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두운 여러분의 마음의 방에 한 줄기 빛조차 통하지 않는 인생이라면,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살아야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남주인공처럼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으로 인생을 마무리 짓는 것이죠.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도 좋은 선택은 아니죠?

 

저는 여러분이 다른 선택을 하기 바랍니다. 유대인 동족들에게도 버려져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돼지를 치기까지 자신의 인생이 밑바닥을 친 탕자를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는 돼지를 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자신의 아버지께 돌아갔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이었든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든 마을 밖까지 나와서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현대판으로 말한다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몸을 파는 성매매 여성과 같은 탕자를 아버지는 이제 오나 내일 오나 기다리며 기차역까지 나가 항상 대기실에서 기다린 것입니다. 내 딸이 무엇을 하든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내 딸임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를 그냥 사랑하십니다. 그가 무슨 변명을 하든 안하든 용서를 구하든 구하지 않든 상관없이 그를 안으십니다. 애초에 탕자처럼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세요.

 

여러분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을 살인하지 말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하나님이 사용한 스케이트 트렁크입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냥 힘들 때, 죽을 것 같이 힘들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이 말 한 마디 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치는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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